2007년 05월 25일
캐리비안의 해적 - 세상의 끝에서 (**)

영화는 별로였지만 포스터는 멋잇으니까 둘이 같이.
드디어 캐리비안의 해적이 3부작 완결됐습니다. 근데 별로군요.
우선 제가 3편에 기대했던 것부터 이야기할게요. 1편인 블랙펄의 저주는 한정된 범위 내에서 이야기를 짜임새있게 풀어나갔습니다. 주인공들의 상관간계도 적절했고, 무엇보다 개인을 움직이는 동인이 명확했어요. 사건 전체의 설정과 제시되는 방식도 좋았구요. 전 블랙 펄의 저주에는 매우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1편과 비교하면, 2편인 망자의 함은 저에게는 재앙에 가까운 수준이었습니다. 설정들은 설명되지 못하고 허공에 둥둥 떠다닙니다. 등장인물들의 동기는 다 어디로 가고 잭따라 삼천리만 하는 것인지. 게다가 2편에서 꽤나 중요한 모험을 겪게 되는 윌도 결국 그 이유는 잭이 도망쟁이, 뺀질이라는 것이 이유입니다. (나의 잭은 이렇지 않아!) 게다가 예고되지 않은 후속작에의 떠넘기기는 보고 난 후의 허탈감만 남겼군요. 아니 그러면 미리 3부작이라고 이야기를 하든지! 그리고 개인적으론 3편인 에서 이런 미진한 점들-설정의 부재, 인물의 동기부족, 이유 없는 사건들. 그러니까 말하자면 설득력 없는 이야기- 을 관객들에게 간단히 설명해 주고 2에서 나왔던 복선들(그걸 복선이라고 봐 줄 수 있다면 말이지만)을 이끌어 대단원으로 탄탄하게 나아가길 바랬습니다. 근데 안 그래요.
시작부터 문제가 좀 있습니다. 노링턴 제독은 드디어 데비 존스의 함을 가지고 플라잉 더치맨을 자신의 부하로 써먹습니다. 그리고 데비 존스는 노링컨 제독의 명령으로 크라켄을 죽이구요. 그런데 이런 사전 설명이 전혀 없습니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장면들로 관객들은 이야기를 재구성해야 해요. 또 바르보사의 부활과 티아 달마의 목적에 대해서도 중간에 잠깐 언급이 나올 뿐, 제대로 된 이야기는 없습니다. 스포일러 때문에 더 이야기는 안 하겠는데, 전체적으로 이래요. 모든 사건들은 하나하나의 사건만으로만 제시됩니다. 각 사건의 내부 구조와 그 상세는 무시됩니다. 문제는 이 사건의 상세가 무시되어서 설정의 어딘가에 처박아 놓으면 그나마 나을 텐데, 대단원으로 갈수록 설정들을 과격하게 소모하면서 증발시킨다는 거에요. 모든 사건들은 결말의 한 장면을 위해서 소모됩니다. 그 과정에서 목적을 이루는 사람도 있고 실패하는 사람도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에 목적을 이루거나 실패하는 자세한 과정은 생략되고 실패나 성공 후의 이야기도 단순히 매듭지어져 버립니다.
결국 등장인물들도 이야기의 진행에 질질 매여 끌려갑니다. 그래도 2편에 비하면, 3의 등장인물들의 목적이 대부분 설명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심리적인 동기는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동시에 이 캐릭터들은 조건이나 상황 여하에 따라 행동 경향을 휙휙 바꿔요.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상황이라고 생각되면 그리로 움직이기를 주저치 않습니다. 결국 캐릭터의 일관성은 별로 없고 행동성만 남게 됩니다. 이런 경향은 주연급 캐릭터에게 특히 강하고, 조연급 캐릭터들은 그나마 일관적인 목적을 가지고 행동합니다. 하지만 조연급 캐릭터들이 목적 달성의 순간에 보여주는 시시함과, 목적 실패의 이유의 시시함은 조연급 캐릭터들을 소모품으로 만듭니다. 별 수 없어요. 이야기가 마지막 클라이막스를 위해서 다른 설정들은 다 날려버리거든요. 심지어 클라이막스를 만들기 위한 설정들은 클라이막스 후에 맥없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아니 거기서 왜 도망가!) 중요한 건 영화의 마지막 클라이막스 장면과 주인공 - 잭, 윌, 엘 - 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아, 이리저리 아무데나 돌아다니던 주연급 주인공들은 마지막에 갑자기 자신의 할 바를 깨닫고 그 일들을 합니다. 뭐 그 덕분에 영화가 간신히 완성은 돼요.
결국 제가 보기엔 세상의 끝에서는 이리저리 풀어놓은 이야기를 제멋대로인 주인공들로 꾸려 나가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끝나면 나머지 설정들은 고이 접어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리는 영화입니다. 이야기 측면에서는요.
하지만 순수히 보는 재미는 있는 편입니다. 2편을 좋아하셨다면 3편을 많이 실망하시지는 않을 겁니다. 좀 지루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요. 자, 그 전에 이 영화를 보시려면 2가지를 명심하세요.
1.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최적채식탐색자입니다. 자신에게 이로운 측면이 발견되면 재빨리 그리로 이동하며, 그 과정에서는 배신이나 배신자의 재합류는 대부분 이들에게 감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2.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잭, 윌, 엘입니다. 나머지 인생들과 그의 이야기들은 그냥 불쌍하고 허망하구나 해주세요.
뭐 간단히 말하자면 이야기 측면에서는 뼈대만 앙상하지만, 놀이동산 이야기가 꼭 풍부해야 할 이유는 없겠죠? 정말 놀이기구 타는 기분의 영화입니다. 별둘.
# by | 2007/05/25 11:46 | 영화, 드라마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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