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의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에 대해서 고통하는가.

김현

4.19 세대 비평가. 자유, 한글세대. 일본어시대 이후 소학교 때부터 한글교육을 받은 최초 한글세대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공동체 이론을 받아들이고, 상상공동체의 구성에 문학과 신문이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한글교육세대이기 때문에 최초로 일어로 중역되지 않은 외국문학에 접촉했다. 산문시대의 이청준, 김승옥 또한 외국문학도들이며, 문학과 지성에 같이 참여, 외국문학도들에 의해서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다.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김현은 비평이 예술을 지도하는 것이라고 생각지 않고, 비평 자체가 하나의 예술성을 지닌다고 보았다. 문학의 자율성 안에서 비평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김현은 문학은 써먹을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문학은 써먹을 수 없으므로 관심,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고, 우리를 이해관계로서 억압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문학은 그 억압과 억압에 의해 야기된 불행을 대상으로 삼아 그것을 드러내어 추문으로 만든다. 문학은 사회로부터의 거짓 화해를 거부하며, 그 자체로 파괴-부정의 징후가 된다. 거짓 화해를 하지 않고 불행을 똑바로 비추는 문학은 파괴의 징후이면서 동시에 행복의 징후, 행복의 추구이다.

이는 마르쿠제의 긍적적 문화와도 통하는 바가 많다. 마르쿠제는 긍정적인 문화란 물신화되는 사회의 대립항에 서 있다고 보았으며, 문화는 언제나 물신화라는 현실을 타격하고 공격한다고 보았다. 문화의 이런 발화가 거듭될수록 문화는 더욱 더 물신에서 멀어지고, 물화에 대한 직접적인 발화가 가능하나, 동시에 문화는 점점 더 물화와 멀어지게 된다.

문학은 무엇에 대해 고통하는가.

문학은 우리가 억압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기제이며, 추문을 겉으로 드러내는 존재이다. 하지만 소비사회는 인간에 대한 직접적인 억압을 줄이려 하고, 이는 문학의 위치에 영향을 준다.

억압의 1차원적 형태는 억압이 문명 사회의 기본적인 성립 요건이라는 것과 동시에 직접적인 억압, 그러니까 정치적인 억압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억압들은 금지이며 문학의 기본적인 대립항이 된다.

하지만 2차원적 억압, 소비사회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억압은 형태가 다르다. 소비사회는 우리에게 욕망에 충실할 것. 그리고 원하는 것을 향유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겉으로는 어떤 억압의 형태도 지니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에게 쾌락을 제공한다. 금지를 고발하며 쾌락을 구현하던 문학의 지위는, 이 소비사회 앞에서 하락하게 된다.

하지만 산업 사회는 향유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향유를 창출하는 것이다. 산업 사회는 필요치 않은 거짓 필요를 만들어낸다. 사람들의 구별지으려는 욕망이 거짓 필요에 대한 향유를 만들고, 이런 구별짓기의 욕망은 결과적으로 타인과 자신에 대한 억압이 된다. 그리고 이런 향유를 통한 행복으로의 의도적 방향짓기는 거짓 행복이며 거짓 쾌락이다. 행복은 유토피아의 정의가 불가하듯이 한가지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은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문학적인 찰나의 것이다.

그러나 문학은 이러한 획일화가 이루어지는 소비사회에서 저항의 획일화나 저항의 프로그램화라는 이름으로 소외된다. 문학은 제도의 의해 편입되고, 돈 주고 살 수 있게 상품화되어버린다. 여기서 문학은, 제도화된 스스로를 계속적으로 공격해야 한다. 자신의 적극적인 외부화를 통해 부정과 저항의 가능성을 계속 만들어야 한다. 문학은 써먹을 수 없기에, 효용과 써먹음이 필요한 이 세계에서 저항 가능하다. 문학을 인간을 억압하는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징후가 됨으로써 계속적인 행복을 추구한다.

여기서 김현은 문학이 파괴의 징후가 되는 방법은 부정적 대상의 파괴와 동시에 형식파괴적인 충동이 있다고 보고 두가지를 다 지지했다.

이에 대한 반 명제로는 문학은 이미 소비사회에서 소외되어 있으며, 김현의 작업은 그것의 신성시가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가 있다.

추가 :

김현의 세계관은 칸트의 가시계/비가시계 구분과도 연관되어 있다. 칸트는 이유/실천이성을 윤리학/순수이성의 경지로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 아름다움과 판단력이라고 보았다.

억압에 대해서 / 마르쿠제는 문명화의 과정에서 억압은 자연상태의 폭력을 막기 위해 필수적이나, 물신화된 사회에서 과잉억압이 일어나기에 문화가 이를 타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by 아힌 | 2007/04/01 18:57 | not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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